[336-36] 학급문집과 학기말 수업
땀샘학급살이통신문 336호 / 덕정초 36호 |
2013.11.
학급문집과 학기말 수업
이제 학급문집을 준비한다. 학급문집에 담을 글과 그림을 방학 전 다 모아야 한다.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편집할 겨를이 없다. 아이들 글과 작품만 다 모아두어도 다한 셈이다. 기말 고사와 각종 연구·시범학교 보고회, 학예회, 졸업 준비로 2학기는 정말 눈코 뜰 새 없다. 아니, 2학기 전체가 시간이 일주일, 보름 단위로 지나가는 듯하다. 학급문집 만들기는 순수하게 학급문화의 결실이다. 교사의 의욕과 노력이 없으면 시작할 수도 없다. 설령 시작해도 그것은 고역이 된다.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가 없으면 알맹이 없는 껍질이다. 해도 안 해도 그만이다. 학교 실적으로 드러나지도 알아주는 이 없다. 하지만 결국에는 교사 성장 밑거름과 성찰과 성장의 씨앗이 된다. 그래서 학급 문화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수한 교육의 결실이 되느냐, 마지못해 만드는 고난의 시간이 되느냐는 각자의 의식과 철락, 도전과 열정에 달렸다. “선생님, 학급문집 뭐예요?” “그것 만들어서 우리한테도 줘요?” “그래!” “우와!” 문집 이야기를 처음 꺼내면 자주 듣는 말. 문집을 보거나 만들어본 아이들이 많지 않아 문집이 말 자체를 모르는 아이도 있다. 또 글을 모아 딱 한 권만 만드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모두 한 권씩 가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늘 글 쓰고 내면 그것으로 끝인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랬을 것이다. 글 묶음 실적 보고나 실천 사례로 파일이나 묶어 모아둔 것만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땀샘반 10까지 만든 문집이 있어요. 보세요.” 학기 초 교실에는 벌써 우리 반 문집을 꽂아 두었다. 가끔씩 이야기하고 때로는 한번 씩 읽어준다. 문집 감상을 한다. 어떤 글들이 실리고, 써야하는지 알아봐야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직접 보면 감이 잡힌다.
땀샘반 문집이 스무 권 넘게 있다. 다른 지역 선생님들 문집도 있다. 한 사람에 한 권씩 돌아가도 남는다. “우와, 샘 봐!” “이봐. 이 날에 아이들이…….” 문집에 학급일지, 별표 일기, 기억에 남는 일 따위가 자세히 담겨 있다. 문집 한 권을 뽑아 10년 전 사건을 읽어주었다. 청소 시간 도망간 이야기, 말싸움 한 일, 숙제를 못해서 꾸중 들었던 일 따위가 많다. 보고 듣고 한 그대로 실렸다. 어제 쓴 일기 같다. 보고 듣고 한 대로 자세히 써야 1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겪은 것을 잊어버리며 산다. 몇몇 큰 충격 사건 말고는 몇 달 지나면 다 잊는다. 그래서 기록하여 남긴다. 그게 동물과 크게 다른 점이다. 자세히 말한 대로 들은 대로 써야 생생하고 되살아난다. 좋은 기억도 있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있다. 기왕 쓰는 것 좋은 기억이 더 좋겠지만, 지금 안 좋지 기억이 나중에도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나중에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깨달을 수도 있다. 좋든 안 좋든 이런 경험에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그런 마음가짐이 먼저다. 학급문집을 보면서 ‘마음 세움’부터 다져야 한다. “지금 쓰는 글은 20년 뒤 나도, 내 자식들도 볼 것이야. 그래서 대충, 빨리, 건성으로 덤비지 말고 역사를 기록한다고 생각하며 쓰자!”
학급문집을 준비하다는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면 교과서 단원도 문집에 담을 만한 주제로 보인다. 국어 6단원은 논설문 공부다. 주장과 펴고 그에 따른 근거를 찾고, 적절한지 따져본다. 이 단원에서 지난 6년 동안 학교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일 쓰기도 나온다. 문집에 싣기에 딱 좋다. 차분히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지난 일을 생각 못하거나 생각 않고 쓰면 대부분 수학여행 때 놀이기구 탄 이야기만 나온다. ‘-갔다. -했다. -재미 있었다.’만 되풀이한다. 처음에는 마음껏 쓴다. B4종이를 준다. 다 쓴 것을 그날 하루는 다 훑어본다.
다음 날 칠판에 아이들이 쓴 글에 대한 평과 고칠 점을 쓴다. 다시 쓰도록 했다. 가장 먼저 고쳤으면 하는 것은 남 이야기가 아닌 자기 이야기 쓰기다.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써야 한다. 친구가 혼난 일, 친구가 실수한 일, 바라본 본 일 따위로 자기 이야기를 쓰지 않는 아이가 많았다. 물론 그런 이야기와 경험이 많다. 있다. 그렇지 지금은 자기 이야기다. 두 번째는 ‘-했다, -봤다, -재미있었다.’는 나열식 글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했는지, 무엇을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봤는지, 무슨 말을 주고받고, 그때 자기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기주장과 의견을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 하나하나 댓글로 고칠 부분을 달아주었다. 세 번째는 얼마 전 수학여행 놀이기구 탄 이야기만 쓴 글이다. 물론 수학여행이 가장 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학교 6년 생활을 대표할 만한 몇 가지 사건이 더 있을 것이다. 찾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나 친구, 일기장을 보면서 되새겨볼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네 번째는 마무리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했다. 했다고만 하고 끝나버려서 보고서 같은 글이 있었다. 전체를 묶어 정리하거나 자기주장이나 의견을 내세웠으면 했다.
자기 이야기와 삶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안면 장애를 극복한 당당한 엄마 김희야씨 영상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의 눈살을 편치 않게 하는 얼굴이지만 당당하게 꿋꿋하게 사는 김희야씨. 어떤 위인보다 마음이 넓고 생각의 폭도 깊다. 아이들도 눈물 글썽이며 보았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 삶 이야기가 중심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이런 것에 약하다. 경험이 적다. 익숙하지 못하다. 남이 준 문제, 남 이야기, 남 비판, 남을 비교하는 생활에 익숙해 자기 생각, 말, 삶을 드러내는 경험이 적어서 그랬을 것이다. 일기에서도 자기 이야기보다는 남 이야기가 많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고 보여도 말괄량이 남자 애들은 무슨 뜻인지 감을 못 잡기도 한다. 여전히 수학여행 놀이기구 타서 재미있었다는 글을 단 5분 만에 쓰고 다 썼다고 내려고 나온다. “좀 더 생각해보자.” “생각이 안 나요!” “그래도 자꾸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면 뇌도 반응해. 반응이 나올 때까지 노력해보자. 중간에 포기하면 뇌도 포기해. 그러면 무엇이든지 다 잊게 돼.” “그래도 생각 안 나는데요?” “그래 지금 당장은 생각나지 않지. 그러면 집에 가서 엄마아빠에게 어릴 적 이야기도 듣고, 사진도 보고, 지난 학년 일기장, 책, 기록을 보거라. 그래서 기억해내는 노력을 해야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당연히 기억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그래도 기억 안 나면…….” ‘기억 안 나면 그냥 그대로 내라!’ 이 말을 듣고 싶은 것인지, 그래서 빨리 내고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인지. 끝까지 한 번 더 해보도록 한다. 약간 짜증 섞인 얼굴로 되돌아가는 몇몇 아이를 보면 미안하기도, 괘씸하기도 하다. 이제는 털어버렸다. 이런 감정 또한 적응해야지.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한다. 문집 만들기 이제 시작이다. 무수한 감정의 부대낌이 일어날 것이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으로 이겨내야지.
미술 시간 알리는 것 꾸미기에 문집 표지 만들기도 나온다. 때 마침 딱딱 맞는다. 문집표지 만들기를 주제 주고 저번 주에 만들었다. 뒤 게시판에 붙임 종이를 붙여 놓고 스티커 하나씩 주고 우리 반을 대표할 만한 문집 표지에 붙이라고 하니까 이 그림이 뽑혔다. 아이들이 성격과 별명이 다 담긴 우리 반 얼굴이다.
학기말 교과서를 분석해보면 모두가 학급문집에 연관이 있다. 문집에 실을 만한 글이나 그림을 만들 만한 기회가 보인다. 국어, 사회, 실과, 미술과 같은 과목에 정리하고 마무리 주제가 담겨 있다. 체육과 여가 활동이 있어서 여가 활동한 경험이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도 된다. 일기를 꾸준히 써왔으면 그때 기억을 좀 더 자세히 쓰면 된다.
교과 시간을 문집과 엮으면 여러모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교과 시간 마치고 따로 시간을 내기도 힘들다. 교과학습을 제대로 진지하게 하고나서 그 결과물을 문집으로 실으면 된다. 주제를 조정해두면 된다. 학기말은 늘 이렇게 머릿속에 문집과 교과를 중심에 두고 수업을 계획하고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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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일하고 샘처럼 맑게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