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몇 학년하지?


내년에는 몇 학년하지?

전담할까?

부장 자리라도 하나 맡을까?

고학년은 피해야지!

 

겨울 방학쯤이면 다음 해 몇 학년을 맡을까 고민을 한다.

말썽부리지 않고 말 잘 드는 아이들을 맡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들 것이다.

분위기 좋은 사람들을 쫓아 학년을 정하거나, 호흡 맞은 사람끼리 몇 년째 뭉쳐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학교도 함께 옮기며 같은 학년을 몇 년째 이어가는 분들도 있다.

보통 고학년을 첫해 맡고 나서는 다음 해는 아래 학년으로 내려간다. 아동 관리가 수월하고 여유로운 학교 업무에 초점을 맞춰 눈치작전을 편다.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을 피해 다니다 보면 말 잘 듣는 학년과 관리하기 쉬운 학년을 늘 달고 다니려고 한다. 학교 이동 점수나 승진 점수에 얽히면 부장 자리가 경쟁이 되기도 한다.

보통 새내기 때나 학교 옮긴 첫해는 본교 교사들이 고르고 남은 학년을 맡게 된다. 거의 5, 6학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쩔 수 없이 맡은 학년이지만 다음 해는 아래 학년으로 내려간다. ·저 학년에 머물며 그 학교 만기를 채운다. 하지만 새내기 때부터 몇 년째 6학년만 해오거나 한번 맡은 학년 아이들을 졸업할 때까지 이어가는 분도 계시다.

학년을 선택하는 교사들의 철학과 삶의 기준에 따라 다양하다. 학년 선택뿐 아니라 학급운영 방법도 달라진다. 가만히 보면 심지어 교과 지도법도 다른 듯하다. 비슷한 성향끼리 비슷한 학급운영과 교과 지도법이 묶이는 듯하다.

학년 선택에 나름의 의미와 목표를 두고 해마다 새로운 도전을 펼치는 분도 있지만, 편해서 여유로운 것만 쫓아 늘 하던 대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학급운영의 변화와 확장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학년을 선택할 때 선배 교사가 후배 교사들에게 조언을 곧잘 한다. 다양한 학년을 겪어보라고 많이 말한다. 한 학년만 오래 하거나 아이들을 달고 올라가지 말라는 충고도 곁들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교사를 겪어볼 필요가 있다는 까닭이다. 여기에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은 거의 비슷하니까 다양한 성격의 사람을 만나보라는 뜻이 깔렸다.

그런데 내가 보기로는 고학년, 다음 중 학년, 그다음 중·저 학년으로 가는 흐름은 다양한 경험보다는 아동 관리 편리에 초점이 많다. 한 학년을 두 번 이어 하지 않는 이상 한 해 지나고 나면 다 잊기 쉽다. 한 해 쉬고 같은 학년을 하면 또 새로운 느낌이다.

 

많은 교사가 주어진 고학년은 어쩔 수 없는 학급운영을 한다. 그래서 그 한 해를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힘을 쏟고 목표를 둔다. 3, 4학년은 말을 잘 듣고, 귀여울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지니며 학년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 기대처럼 재미있고 귀여운 학급 운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고학년은 덩치도 크고, 큰 사고도 잦다며 미리 겁먹고,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 짐작하고 대하니까 말이 딱딱하고 엄격해진다. 기대 수준이 다른 학년보다도 낮은 편이다. 별 기대와 희망은 없으니까 다시 맡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의 학년 선택이 되어도 새로운 목표와 확장성 있는 도전으로 학급을 꾸리는 분들도 있다.

한 학년을 몇 년째 하든, 한 번 맡은 학년을 졸업 때까지 이어가든 자기 교육 철학을 꿋꿋하게 증명해 보이며 성장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런 교사들이 성장한다. 가르치는 방법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진다. 그런 교사들은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상처 입고, 고민과 절망, 배신감도 느끼면서 보듬고 품으면서 성장한다. 그런 과정을 피해 하고 벗어나기보다는 안고 삭히고 소화해야 한다. 그동안 살면서 생긴 거품과 껍데기를 벗는 성찰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학급운영, 교과 공부는 관계와 믿음이 마음 튼튼히 밑바닥에 깔려야 쌓을 수 있다. 학년 선택의 흐름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떤 흐름의 선택인지만 봐도 대충 어떤 삶을 걷고 있는지 보이기도 한다.


새내기 교사들에게 처음에는 고학년을 몇 년 이어서 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 학년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학년 아이들 특성을 알게 된다. 아이들 말과 행동, 수업 시간 반응들을 보고 느끼며 아이들 성향을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말을 배운다. 말에 담긴 아이들 감정과 희망, 요구 조건이 무엇이지 내면의 뜻을 살필 수 있다. 그 학년 아이들의 말과 행동의 수준에 따라서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는 말을 익힐 수 있다. 이것을 아이들의 2의 말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도록 알아듣기 쉽게 말하려면 목적성 있게 들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들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잘 관찰해야 한다. 기록하면 더 좋다. 수업 일기를 쓰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 교사가 어떤 행동과 질문했을 때 어떤 말을 꺼내는지도 기록하면서 만나면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다.

 

같은 학년을 서너 해하고 나면 아이들 말 속에 아이들 마음이 들린다. 보인다. 알아챈다. 그러니까 일부러 속기도 하고, 앞선 걱정을 막기도 한다. 그때부터 아이들 앞에 자신감도 생긴다. 자신감 속에 당당한 목소리가 나오고 삶에 대한 방향과 철학이 깃든 이야기가 교과와 얽혀서 이어진다. 그런 뒤 교과 수업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이들 눈높이와 마음 깊이에 맞는 수업 준비, 발문, 수업 자료, 감정이 다치지 않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아이들 말을 찾는다. 같은 학년은 몇 년째 이어지면서 아이들 말, 진정한 말, 마음을 찾게 된다.

이런 학년의 흐름을 겪고 나서 한 학년을 졸업할 때까지 이어갔으면 한다. 이때는 아이들 성장을 본다. 몸과 마음의 성숙도를 느낄 수 있다. 교사도 성장한다. 이런 성장의 바탕이 튼튼한 학급운영의 체력이다. 이런 철학이 깃든 체력은 아이들 성장을 올곧게 지켜나가게 하는 확장성 있는 힘으로 또 성장한다. 함께 같이하는 교사들도 동화하면서 성장시킨다.


보통 도시 학교는 같은 학년으로, 시골 학교에는 달고 올라가는 학년으로 선택해서 시작했으면 어떨까 싶다.

같은 학년과 졸업할 때까지 맡아보는 경험을 다 겪고 나면 십 년 가까이는 걸릴 것이다. 이런 목적성 있는 학년 선택 경험과 실천 뒤 다양한 학년 경험으로 이어지는 게 괜찮을 듯하다.


법칙은 없다. 다양함이란 달리하는 일정함을 여러 번 겪으면 만들어지는 형태가 아닐까?

일정함에서 깊이를 다지고, 다양함에서 확장되는 삶!

한 학년의 특색을 깊이 있게 겪어 보고, 다양한 학년으로 넓히면서 자기 빛깔이 드러난다. 자기 빛깔로 다양한 학년 학급에 적용, 호환시키면서 학급운영을 재미있게 해 나간다.

아이들 눈높이, 마음 깊이, 말 넓이를 익히는 삶이 교사의 배움이 아닐까?

 

올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았습니까?

올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올해는

몇 학년 하시겠습니까?

 

Posted by 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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