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선생님! 아이들 다모임에서 나오는 의견이나 토의 내용을 들으면 답답해요. 차라리 그냥 예전처럼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일러주는 게 편할 것 같은데. 이렇게 놔둬도 돼요?”

 

우리 학교는 회의가 많아요. 자주 회의를 하는데 결론은 안 나고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해야 해요? 어른들은 이런 회의를 싫어하는 눈치인 것 같고…….”

 

이런저런 연수를 받아 학급에 적용 실천해보면 잘 안 돼요. 나만 그런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성향이 맞지 않는지? 늘 고만고만한 말만 반복해요.”

 

모임과 회의, 토론, 실천도 자꾸 하면서 오르내리기도 빠르고 늦게, 멈추기도 하면서 성장한다. 그 성장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어떤 모양일까?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는 순간, 그 출발 지점은 어디쯤일까?

꾸준하게 오르는 성장일까, 멈춰지는 시기는 없을까? 내려가는 시기는?


위 그래프를 보자.

직선형(란선), 곡선형(붉은 점선), 내려가다 오르는 곡선(초록)으로 세 가지 형태로 그려보았다.

직선형(파란선)은 수학 공식 같은 성장 곡선이다. 기계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 곡선형(붉은 점선)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점점 가파르게 오르고, 내려가다 오르는 곡선(초록 곡선)은 바닥 B 지점을 치고 나서 오르는 모양이다.

 

우리 삶의 성장은 내려가다 오르는 곡선(초록 곡선)이라 본다.

모임, 회의, 협의, 습관 형성도 이런 곡선처럼 성장하는 듯하다. 첫 마음이 A에서 출발하여 바로 직선형이나 곡선형으로 뻗지 않는다. B 지점까지 내려간다. 바닥을 찍는다. AB 구간(연두색 영역)을 혼란스럽고 효율적이지 못하고, 말만 많고 결정을 짓지 못하며 배가 산으로 간다고 여길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다가 BC 영역(연주황색)에서 점점 오르기는 하는데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우리 삶에서 AB 구간을 불필요하다고 여기거나 못 견뎌 한다.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직선형, 곡선형 성장이 되지 않으면 협의와 토의가 필요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 경험이 학습되어 삶의 가치관으로 굳어지기까지 한다.

C 지점을 넘어 좀 더 나아가면 반드시 성장의 기쁨과 성취감을 얻을 것인데 이 두 고비를 넘기지 못하니까 결국 협의와 토의 과정을 믿지 못하고 불필요한 행위로만 여길 수 있다. 믿지 못할수록 ABC 구간이 길어진다. ABC 구간을 늘 맴돌기도 한다.

이 구간을 넘기는 데는 철학과 신념이 필요하다. 많은 교사 모임이나 단체도 이런 고비의 단계를 넘기지 못하니까 1, 2년 이내에 사라지고 만다. 오랫동안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들은 이런 ABC 과정을 여러 번 겪으면서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믿기에 기다릴 수 있다. 그런 마음 씀씀이로 길게 보고 꾸준히 이어가는 내공이 생긴다.

 

AB 구간은 껍데기, 거품, 허물을 벗는 시간, BC 구간은 새 살이 돋는 기간이다. C 지점부터 새롭게 넓혀지면서 성장하는 기간이다. 가속도 붙는다. 공짜는 없다. 진정한 성장은 자기 껍데기를 벗는 것부터 시작이다.

모임이나 협의도 먼저 잘못된 상식, 오류, 편견, 고정관념을 벗는 것부터 시작이다. 토의, 협의, 토론 과정에 감정이 상하거나 의견이 다툼만 있어서 아예 회의를 거부거나 피해 가려 하기도 한다. AB 구간이다. 어렵게 힘들게 이끌어가거나 딸려가다가 B 지점에 다다르면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말이 나오거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고 AB 구간의 과정을 헛되이 보냈다고 아깝게 여길 필요가 없다. AB 구간을 겪으며 B 지점부터 교육 본질에 대한 생각의 공유, 마음, 철학을 함께 갖게 되고, 공통한 목표에 가까워진다. 공동체의 철학적 공유가 일어나는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ABC 구간은 서로의 마음과 철학을 한 길로 잡아가는 시간과 경험의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AC 지점은 같은 높이지만 구성원 간의 관계, 자기 내면의 동기 형성에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바닥을 찍고 오른 다음 성장 과정을 보자. 구성원, 집단, 내면의 동기를 튼튼해지고 나서 일정한 곡선 형태로 성장하는가, 층계형으로 성장하는가?

C 지점 까지는 진솔한 자신의 발견, 교육본질에 대한 철학적 공유 단계다. CD 기간을 어떻게 성장하는지 성찰해보자.

내가 보기로는 어느 정도 정체되다가 어느 지점(1,2,3)에서 층계 오르듯이 성큼 큰다. 그러다 또 정체되었다가 또 한 층계 오른다.

성큼 오르는 부분(1,2,3)은 임계점이다. 물이 끓기 위해서는 100도가 되어야 한다. 99.9도까지는 열을 한창 올렸다가 100도 되었을 때 끊는다. 끊기가 1도에 조금, 10도에 1도의 10배만큼, 100도에 10도의 10배만큼 끊지는 않는다. 끊는점 까지 충분히 열을 올라야 한다. 1,2,3부분을 오르기 위한 정체기는 이른 끊는점에 다다르기 위한 노력 단계다. 그래서 가까운 목표(1,2,3)를 설정함 꾸준히 애를 쓰는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도 이런 층계형 성장 곡선처럼 성장한다. 그래서 아무런 성과 없는 결론이 나더라도 꾸준히 회의하고 모여서 결정해보고, 고쳐가면서 노력한다.

어느 정도 집단의 합의, 공동체의 목표가 세워지면 또 자꾸 모여서 열을 올려야 한다. 임계점에 다다른 어느 한 지점을 겪으면 성취감도 높다. 그러다 또 정체기를 겪으며 열을 올리고 두 번째 임계점에 다다르면 더 큰 성취감과 성장의 기쁨을 함께 느낀다. 갈수록 정체기가 줄어들고 임계점의 높이가 높아질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겪고 나면 굳건한 신념과 철학이 된다. 물고기가 물속에 물을 못 느끼듯, 공기로 쉬면 쉬듯 새로운 문화, 생활 속 문화가 된다.

우리 삶, 모임, 단체, 학교, 학급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 같다. 한평생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문화는 이미 한 세대가 C 지점까지 만들어준 상태에서 열을 올려야 하는 지점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오늘날 우리 학교, 우리 선생님들, 우리 아이들은 어느 지점에 모여 있을까?

A 지점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B, C 지점에서 성장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A 지점에서 출발한다고 여기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ABC 과정을 겪는 것과 겪지 않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힘들고 어렵고 귀찮고 답답한 과정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과정이 정확한 자신, 남을 이해하는 가치관, 아이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다양한 과점을 배울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 또한, 이런 과정이 임계점에 다다를 수 있도록 열을 올리는 훈련이고, 연습이며 체계를 잡는 성찰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도 성장한다.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세상도 그렇게 성장하면서 우리를 성장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각자 다른 생각을 지니고 모여서 갈등의 순간(AB 구간)에 만난다. 부대끼며 다투고, 여러 가지 다른 관점을 보게 된다. 다름이 틀림으로 해석하고 다툼이 일고, 그러다가 틀림이 아닌 다름이란 것을 깨닫고(BC 구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C)을 함께 갖게 된다. 여럿이 한뜻으로 한고비를 넘기면 첫 성취감(1)에 다다르고, 이 맛에 또 다르게 넓히며 다른 사람과 함께 이뤄내고(2), 이뤄낸 것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더 많은 사람, 이웃, 공동체와 더불어 제도와 규칙까지 만들어내면서(3) 진정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공동체로서 구성이 되고, 그런 사회 문화가 숨 쉬는 공기가 된다.

 

우리 삶, 우리 이웃, 우리 학교가 이렇게 성장한다고 믿는다. 먼 길 함께 가는 사람들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다.

우리 성장도 오래 함께 가는 길이다. 한순간 임계점으로 오르기 위한 편법, 우연, 악용은 열을 올리지 못하고 얻는 결과다. 다음 임계점이 힘들어진다. 오래가지도 못한다. 협의, 토의, 갈등, 조정의 경험이 없는 성장은 열을 올려보지 못한 우연, 편법의 결과다. 오래가지 못한다. 한두 개의 임계점에 남의 힘을 빌리거나 권력의 힘으로 올라갔더라도 나중에는 결국 혼자만 남아 머물게 된다. 멀리 가지 못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우리의 촛불은 ABC 구간을 지나서 스스로 깨닫는 순간(C)을 찾았다는 것으로 생각해 본다. 자각만 했다고 바로 성장 곡선의 위를 오르지 않는다. 좀 열을 내어야 한다. 진정한 출발점(C)에 서 있거나, 한 임계점을 넘었을 뿐이다.

Posted by 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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