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다 보면 힘들 때도, 여유로울 때, 쉬어야할 때도 있다.

처음 산을 오를 때는 정상이 얼마쯤 걸릴지, 길이 익숙지 않아 발 앞만 보고 가기도 힘들다.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길 찾는데 온통 신경을 쓰게 된다. 이런 길도 서너 번 다니다보면 익숙해져 눈높이가 달라진다. 높고 멀리 보인다. 목표 지점(정상)에 얼마 쯤 가야 닿을 것인지 감이 잡힌다. 어느 곳이 숨 가쁜지, 쉴 곳은 어딘지, 호흡을 고를 수 있다. 호흡 조절이 가능해지면 처음 올랐을 때보다 훨씬 여유롭다. 앞만 보고 가던 길에 풀과 나무 먼 산을 볼 여유가 생긴다.

 

우리 경험과 공부, 책 읽기 따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방향을 몰라서 바로 코앞만 보기에도 바쁘다. 목표 지점과 거리, 숨 가쁘고, 언제 어디서 쉴지 몰라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피곤해지기 쉽다같은 내용을 서너 번 겪으면 자기 호흡을 깨닫고 몸에 익게 된다. 빠르기 조절과 쉴 지점이 보인다. 한 번으로 끝나버리면 곤두선 신경, 숨 가쁨과 힘듦만 남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산을 한두 번으로 오르고 다시 찾지 않는 사람도 많다. 첫 경험인 힘듦과 숨 가쁨까지만 겪고 체험정도만으로 멈춰버린다. 온전한 코스를 서너 번 도전하고 겪으며 자기 호흡, 목표 지점에 대한 감을 잡으면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즐거움까지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익숙해진 산길에는 꽃과 나무, 풀벌레 소리,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숨 가쁨과 힘듦이 익고,  자기 몸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눈과 귀가 뜨인다.

 

같은 학년을 여러 번 하는 까닭도 비슷하다.

처음 겪는 학년은 산을 처음 오르는 느낌이다. 길을 몰라서, 목표 지점과 감이 없어서 열심히 걷지만 신경도 많이 쓰이고 숨도 가쁘다. 언제 쉬어갈지도 몰라 가다 포기하거나 멈추기도 한다.두세 번 같은 학년을 하면 똑같은 교육과정이지만 깊이를 달리 느낄 수 있다. 보지 못한 것, 빠뜨린 것, 그냥 넘긴 것, 가치 있는 것들이 들어온다. 우선 학교 행사와 학급 교육과정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이들 반응, 행동 패턴도 보인다. 언제 바쁜지, 천천히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런 호흡을 알면 학급살이에 속도와 깊이를 조절할 힘과 여유가 생긴다. 그런 여유의 눈과 마음이 아이들을 더 깊이 볼 수 있는 기회다. 교육과정도 재구성하고 통합할 수 있는 눈이 트이기 시작한다.

 

산 오르기 처음 30분 정도가 가장 힘이 든다. 

길도 가파르고 숨도 가쁘다. 정상 부근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정상 부근부터는 능선을 타면 편해진다. 그때부터는 발아래 산이 시원하게 보인다. 땅만 보던 눈이 먼 산을 향하고 가까운 나무와 풀꽃도 보인다. 풀벌레 소리도 귀에 들어온다. 더 멀리 더 가까이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때부터 즐기게 된다. 한두 번의 경험만으로는 신경이 곤두 세워지고 길 찾기, 끝까지 오르기만 했던 힘듦만 남는다. 여유와 즐거움이 붙으려면 서너 번 정도의 경험, 호흡과 감을 잡을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운전하는 사람과 그냥 옆에 타고 가는 사람의 피로는 다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지만 목적지를 알고 가는 사람과 모르고 가는 사람의 느낌과 상태는 다르다. 얼마 남았는지 어디를 통과하고 쉴지 운전자는 온몸으로 느끼고 조절한다. 지루할 겨를이 없다이런 차에 타고만 가는 사람은 지루해지기 쉽다.  목표지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능동적, 수동적이게 된다. 능동적인 사람은 주제척인 경험을 반복하면서 온몸이 산다. 수동적인 사람은 한두 번의 경험만을 반복하면서 쉽게 지루하고 피곤해진다. 같이 몸이 피곤해도 정신 건강은 다르다.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고, 잃는 사람이 있다. 도전하면서 깊이 넓히는 사람이 있고, 경험이 많은 듯 보이지만 하나씩 포기해가는 사람이 있다. ‘나도 한 번 해보았다고말하면서 한 번의 경험으로 평가만 하는 사람도 있다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해보고 여전히 도전하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한 번을 하고 있다. ‘해 보았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여전히 하고 있는 중이다. 하고 있다는 말은 같은 행동, 경험이지만 처음과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것과도 같다.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 중심으로 읽지만 두 번째 읽으면 처음 읽을 때 보이지 않았던 사건이나 인물이 드러나게 된다. 세 번째 읽으면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생각나고, 네 번째 는 자기 삶과 엮어보기도 한다. 같은 책을 여러 번을 읽으면 똑같은 내용이어도 다르게 읽힌다. 관점과 깊이와 넓이가 달라진다. 속도 조절도 가능해진다. 빠르게 넘어갈 부분, 천천히 곱씹을 부분이 보인다. 이렇게 읽으면 책 읽는 즐거움이 붙는다.

 

같은 경험을 반복하는 까닭은 즐거움을 몸에 붙이기 위해서다.

책 읽기, 공부하기, 학급운영(살이)도 결국 즐거움이 붙으면 오래가고 새로워 진다. 깊이와 넓이가 생기고 자기만의 전문성을 키워진다. 자기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힘, 자기주도적인 삶으로 이어진다처음 산을 오를 때는 자기 주도가 아니라 힘들고 지루하다. 다른 사람을 따르다보니 자기 호흡과 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것도 자꾸 하면 점점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때쯤이면 의지하지 않고 가는 길을 즐길 수 있다. 몸에 익기 때문에 익은 만큼의 여유가 생긴다. , , 코가 열리고 생각도 넓게 펼쳐진다.

 

즐거움은 힘듦이 몸에 붙어 익숙해졌을 때 주는 선물이다.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힘이다. 같은 행동과 경험의 반복이 결코 똑같은 결과의 반복이 아니다. 행동은 같아 보여도 그 내면에는 생각과 관점이 깊이 있게 펼쳐지고 성장한다.

 

살빼기, 자전거타기, 수영 배우기, 그림그리기……

모두가 한두 번의 경험으로 안 된다. 어려움과 힘듦, 상처가 따른다. 익숙함에 즐거움이 붙고, 자기 주도, 자기 것으로 바뀐다. 그래서 배움이 즐겁다. 즐겁게 하는 배움이 몸에 붙으면 잊지 않는다. 잊을 수 없다.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한다. 살맛이 난다. 세상은 그렇게 살맛나게 살아야한다. 힘듦, 어려움의 뒤 즐거움을 얻자. 포기하지 않으면 꼭 온다고 믿자.

Posted by 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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