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나온 것인가, 넓힌 것인가

 

장학사로 나온지 석달이 지나간다.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지낸 삶과 교육행정하는 자리는 다르다. 차이가 난다. 

현장에 있으면서 내려오는 공문과 지시 사항에 늘 불만과 답답함을 토해내었다.  '교육행정'을 바라본 눈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교육 행정의 자리와 기관에 있어보니 여러가지 차이점과 희망도 함께 보인다.

 

아이들이 공부하면서 수업 준비, 아이들과 소통, 동학년 선생님, 학부모, 교사 공부 모임과 같은 사람과 관계가 학교 현장에서 중요했다. 교육행정은 '행정'에 초점이 짙다. 그래서 행정 서비스를 해주는 사람, 민원 대응에 민감하다. 학교 현장이나 도민들 의견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일이 많다. 관계 회복이나 관계 맺기와 같은 소통의 과정보다는 문제를 풀어야 할, 풀어주어야할 책임과 의무로 힘든 나날을 겪고 있다. 그래서 외로워진다. 하루 내내 컴퓨터 모니터랑 글자판으로 글을 주고 받는다. 아무런 문제 없는 일 처리가 목표점이 되어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담당 업무에 따라 생활 리듬도 차이가 난다. 정확하고 빠른 업무리 처리 능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장학사이런 업무와 소통과 관계를 맺으며 시간과 노력이 들여야할 '장학'이란 일도 있다. 행정 업무는 정해져 내려오지만 장학은 어찌보면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할 일이기도 하다.

장학, '학교교육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교육작용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지도·조언하는 전문적인 기술봉사'라고 사전적 의미가 있다. 지도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가 만들어져 그 본래 목적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고민이다.

 

'나눔'과 '본보기'란 말로 풀어가고 싶다.

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자리(교실)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에는 늘 현장이 다 교실이다. 수업을 이제 그만 두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교실은 더 넓어진 개념으로 다시 정의를 내린다. 나와 한해 동안 같이 할 아이는 없지만, 내가 찾아가야 할 아이와 선생님, 모임이 더 많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내 마음도 편하다.

 

22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경험과 기운, 느낌은 아직까지 그대로 살아있다. '교육행정'은 배우며 익혀 나가고, '장학'은 수업과 모임 나눔으로 만들어가야겠다.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시간이 걸린다. '장학사'라는 고정된 관념과 이미지를 희석시키거나 유연하게 하려면 꾸준히 반복된 모범과 변화가 이어져야겠다. 학급에서 '수업'이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자기 꿈을 찾는 일이라면 학급을 벗어난 '수업'에는 여럿이 함께 문화를 가꾸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겠지.

 

어느 자리와 직책에 있던 '수업'한다는 마음을 지켜나가고 싶다. 

교사는 수업으로 성장한다. 수업에서 아이들이 눈빛, 마음, 웃음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며 이어간다. 내 학급, 우리 학년, 우리 학교, 우리 교육이 결국 같은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러면서 여럿이 행복해지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나 개인이 앞서가는, 빨리 갈 수 있는 속도와 기회를 지녀도 여럿 사람이 함께 한 걸음을 딛는 어울림과 맞춤이 필요하겠다. 앞에서 이끌거나, 뒤에서 밀기보다는 반 걸음 앞에서 방향을 일러주고, 같이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겠다.


교실이 넓어졌다. 성장하는 만큼 우리 세상도 넓어진다. 

만남은 늘 새롭다. 같은 사람과 같은 자리에 만나더라도 새롭다. 

배움은 성장이다. 배울 수록 세상은 좁아지기보다 더 넓어진다 

새로움은 벌써 내 안에 있었다. ^^

Posted by 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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