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땀샘 수업 일기를 정리하다가 다시 본 글입니다. 상담봉사자들이 오셔서 한 상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 지금도 생생합니다. 학급운영에서 학급 살이란 이름을 붙인 까닭에 이런 사건이 한 몫을 했습니다.
올해 첫 글을 무엇으로 쓸까 고민을 했습니다. 학급에서 준비할 것, 챙길 것 따위도 있는대 웬만한 사이트 검색해보면 다 나와있습니다. 아이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먼저 건넬까하는 글로 써 볼까 했는데 이 글에서 마음이 꽂혀서 움직이지 않더군요.
학기 마무리를 달리는 시점에서 나와 아이가 주고받았던 말, 오해, 그때 감정을 한번 더 되새겨본 기회였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먼저 꾸짖었으면 마음이 닫혔을 것입니다.
우리가 학급 살이를 하는 까닭을 먼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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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일
1센티 컸다
어제 상담 시간이 6교시다. 5교시까지 수업인데 한 시간 더 하고 갔다. 1학기에 학급 상담을 해준다는 공문을 보고 신청했는데 당첨이 되었다.
상담을 마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이 돌아가는데 나한테 무슨 말을 한다.
“**는 버릇이 없어요.”
“왜?”
“상담 시간이 자기소개를 하는 ***가 나는 이런 것 싫어요. 안 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해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황당했어요?”
무슨 말인 자세히 알고 보니까 상담 시간 자기소개 차례 때
“전 6-3반 ***입니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선생님 권유로 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하고 싶은 일은 상담 선생님이 다시는 이 학교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그래, 무슨 까닭이 있겠구나. 다른 약속이라도 있는데 남으라고 해서 화가 난 게 아닐까?”
“그래 그렇게 말하는 게 좀……‘
“그래 상담 선생님이 뭐라 시든?”
“역시 상담 선생님이라서 무슨 화가 난 일이 있네, 몇 번 같이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네. 한번 알아봐야겠네.”
평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문자가 왔다.
‘쌤 저는 다시는 상담프로그램 안 할 거예요. 그런 것 다시는 신청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손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탁. 한 번에 끊어져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행동에 화부터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이 녀석이 어떤 마음인지 살피기에 앞서 이런 행동에 화가 나서 다그치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을 것이다. 좋지 않은 얼굴빛을 먼저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무슨 오해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앞선다.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이야? 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니? 선생님이 놀랐다. 말하기 어려우면 메일로 보내줘’
잠시 뒤
‘선생님 마음대로 상담 신청하신 것과 아까운 시간은 어떻게 하실 거죠? 하고 싶은 사람만 시키세요.’
‘**이 다른 계획이 있었는데, 샘이 그 시간을 막은 모양이네. 그럼 얘기를 미리 하지 그랬냐? 이야기했으면 들어줄 건데. 신청은 시간이 급하고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서 그랬다. 미안^^’
학급 누리집에 당번이 일지를 남겼다.
2010년 10월01일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5교시 공부만 하고 마치지만, 상담 수업 때문에 6교시까지 하고 집으로 갔다. 오늘이 첫 상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애들이 1교시를 더하고 가니 약간 짜증 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이 오셔서 분위기 메이커를 해주셔서 분위기가 갑자기 좋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상담 선생님이 내주신 복사물을 다 완료하고, 선생님이 자기소개를 시켜서 애들의 소개를 들어본 뒤, 수업은 금세 끝나버렸다. 첫날이라서 그런지 애들은 아직까진 재밌어하진 않았지만, 상담선생님은 언젠간 재밌어 할 거라고 굳게 믿으시는 것 같았다
일지 밑으로 **가 댓글을 남겼다. 밤 10시 20분쯤이다.
난 진짜 재미없었다.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신청한 의도는 좋은데 시간 낭비인 것 같다. 왠지 그 상담 선생님들에게 신뢰가 안 간다. 안 그래도 바쁜데 왜 그런 것까지 해서 시간을 더 낭비하는지 모르겠다. 난 그 상담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드니까 마음에 드는 아이들만 6교시에 하는 상담수업에 남았으면 좋겠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고민도 없는 아이 괜히 남겨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는 바보 같은 짓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억지로 하기 싫은 사람까지 시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고민이 있고,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장유에 있는 임시로 머물고 있는 곳에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괜히 우리 학교까지 찾아와서 우리 기분을 나쁘게 해서 결국 돌아오는 건 상담 선생님들도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우리가 별로 대응하지 않으니 선생님들도 별로 안 좋아하실 것이다. 우리 3반이 아닌 2반에 가도 되는데 왜 하필 우리 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1반이 반응이 좋아서 한 번 더 왔다면 1반에나 가지 왜 3반에 올까? 난 아무튼 상담 수업이고 상담선생님이 안 오셨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논리가 서 있다. 물어보지 않고 어른 마음대로 시킨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또한, 상담에 대한 인상이 썩 좋지 않은 듯하다. 자기를 들어내는 것에 대한 불만도 가득하다. 상담이 고민이 있는 사람만 푸기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일 수도 있다. 문제가 있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내 속에 숨은 능력이나 다른 사람과 서로 마음을 나누며 느끼는 과정을 겪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하기도 하다. ‘상담’을 보는 관점을 여러 가지였으면 한다.
그 밑으로 나도 댓글을 남겼다
상담은 자기 고민을 푸는 것도 있지만, 숨겨진 자기 장점이나 능력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또래끼리 다른 사람끼리 생각을 나누어서 자기의 소중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지. 그런 경험을 자주 많이 하면서 우리가 공부를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찾기도 해. 뻔히 아는 이야기고, 늘 하는 이야기지만 소개하는 것도 해마다 다를 수가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하고 고민하고 느끼는 것들이 함께 커가잖아. 그런 성장만큼 내 마음도 커가고 있지. 그런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해하고 나누면 공부하는데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잘할 수 있겠다. 선생님은 믿는다. 그런 힘이 커야 제대로 공부하고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해.
너희에게 안 물어보고 정한 것을 사과한다. 왜 상담을 신청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것도 이 자리에서 사과를 할게. 따로 남아서 한 시간 더 하는 것도 사과할게. 선생님 나름 생각에서 좋은 기회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부디 그런 마음 조금이나마 헤아려서 좋은 시간 보냈으면 해.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가 늦게 왔다. 머리도 부석부석하다. 평소와 다른 없이 인사를 나누었다. 내 골마루 쪽으로 나가 연구실로 나가는 길에 창밖에서 보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손짓으로 나와 보라고 하고, 연구실로 데리고 갔다.
“그래, 어제 화가 많이 났지? 어제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었느냐?”
“다음 주 수학여행이라 어제 학원에서 당겨서 공부한다고 해서……”
“그럼 미리 이야기하지 그랬냐? 선생님이 상담한다고 2주 전부터 이야기했는데……”
“아, 저는 그 상담이 부모님이 오셔서 하는 그런 상담인 줄 알았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화가 나고 그 화를 그 시간에 이야기했네.”
“네.”
“그럼, 어제 선생님이 문자도 보냈지만, 너희한테 물어보고 신청하지 않은 것은 사과할게.”
“아니, 제가 잘못했어요. “
“선생님은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하고 나서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할 것 같네. 어제 그런 말을 해버렸으니 다른 사람(또래 친구와 상담교사)은 무슨 생각이 들었겠니?”
“황당했겠지요.”
“그래, 버릇이 없다거나 건방지다는 말도 나오겠지.”
“네.”
“지금 선생님하고는 오해를 푼 것 같은데 그 사람들에게 아직 풀지 못했잖아. 어떻게 할까?”
“제가 사과할게요.”
“선생님도 사과할게. 아침 시간에 친구한테 말해도 되겠지?”
“아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사과할게요.”
“아니, 선생님도 잘못했으니까 먼저 사과할게”
“선생님은 **가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해. 공부도 잘하고 말이야.”
“아니, 공부는 별로……”
씩 웃음을 띤다.
“훌륭한 사람도 실수해. 실수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실수를 풀고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지. 또 다른 사람 오해를 푸는 노력이 필요해. 그래야 다른 사람이 나를 신뢰, 믿음을 갖는 것이야. 그런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지. 네가 이렇게 생각하니 좋아. 친구들한테는 말하면 되고 상담 선생님한테는 어떻게 하지?”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그래 상담 선생님께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
**과 함께 교실에 들어왔다.
조용히 앉히고 어제 있었던 일을 끄집어내고 **이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했다. 오해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화가 나면 누구나 실수한다. 인격, 인간성을 의심하거나 오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는 오해하지 않도록 풀어야 한다. 가지고 있거나 묻어두면 다른 이가 내 인격을 ‘오해’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실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실수를 어떻게 인정하고 더 큰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배움이다. 또한, 실천이기도 하다. 그것을 가르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되게 하고 싶다.
학급에서 이런 일을 푸는 과정이 아이도 나도 커가는 기쁨이다. 결과가 늦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을 덮거나 묻고 넘길 수 있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어 풀어보는 게 ‘학급 살이’가 아닌가 싶다.
학급에서 많은 일이 벌어진다, 내가 시키기도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 다 좋을 수 없다. 싫어도 참고 따르기도 하고, 좋지만 귀찮아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선생님 눈치를 보면 하기도 한다.
‘학급운영’이라 아니라 ‘학급 살이’라고 말하는 것은 ‘운영’의 주체가 교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살이’는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어제오늘 진하게 살았다. 뜻있게 살았다. 미안하고, 화나고, 잠시 오해하고, 서운하고, 걱정되고, 진지하고, 안심되고, 시원하고 고맙고, 기쁘고, 뿌듯하고 힘이 생겼다. 살다 보면 좋은 감정에서 일이 생겨 나쁜 감정으로 끝맺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감정에서 시작하여 좋은 감정으로 해결될 때도 있다. 좋지 않은 감정에서 시작해서 좋지 않은 감정으로 남으면 늘 찝찝하고, 스트레스가 된다. 가장 좋은 것이 좋은 감정에서 좋은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좋겠지. 그것은 일이 아닌 ‘추억’ 쪽에 가깝겠다.
학교에서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품었다. 또한, 아이들이 익히는 ‘배움’이란 것도 무엇인가 되돌아보았다. 나에게 이번 일을 풀어가는 고정이 아깝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도 아이도 함께 커가는 좋은 경험이었다.
나도 1센티 컸다.